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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고독 [ 라이너 마리아 릴케 ]2018-06-24 16:21:3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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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 독 [ 孤獨 ]


홀연[忽然]히 왔다가 사라져 가는 이 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 . 아니, 시간 이라기 보다는 이 순간[瞬間]이라고 해야 겠읍니다. 그렇게 고요한 순간을 나는 사랑 하는 것입니다. 이 시작 되는 순간과 정적[靜寂]을,  그리고 이 첫 별을, 이 최초[最初]를 말 입니다. 이럴 즈음 내 마음엔, 소녀[小女]가 자기만의 규방[閨房]에서 홀로 일어났을 때와도 같은 그러한 고요가 깃듭니다.  철 이 들면서


부터 혼자만이 차지해 온 규방 , 그렇습니다.  소녀는 어느 날 부터인가 철 이 들기 시작했고, 그러자 이미 집 안은 온통 변해 버렸읍니다.  이제 그 새하얀 규방엔 삶 이란 것이 나타나기 시작 했읍니다.  아침에 일어난 소녀가 늘 그렇게 열려진 창가에 다가설 때면,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.  그 곳엔 끊임 없이 자라나는 거목[巨木]들이 있고, 새들이 있읍니다. 커다란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


은 정적[靜寂] 속에 사라지는 듯 합니다.  나는 이 바람을 좋아합니다. 속성[屬性]을 깡그리 잃어버린 채 봄을 스쳐가는 변형[變形]된 이 바람을 말입니다.  나는 이 바람이 내는 소리와 의연[依然]하게 삼라만상[森羅萬象]을 헤쳐 가는 그 의 먼 몸짓을 좋아합니다. 이 밤을 좋아합니다.  아니, 이 밤이라기 보다는 시작[始作]되는 이 밤의 기나긴 싯구[詩句]를 나는 좋아합니다. 그러나 아직 미


숙[未熟]한 나 는 이 싯구를 읽을 수가 없읍니다.  이젠 이미 사라져 버린 이 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. 그러나 내 마음엔 비로소 이 순간이 도래[到來]하는 듯 합니다.  천민[賤民]이여, 그대 언젠가는 사라져 갈 것입니다. 제왕[帝王]이여, 그대도 결국 무덤으로 한 줌의 흙으로 화[化] 하고 말 것입니다.  화사[華奢]한 여인들이여, 그대가 땅에 묻힌 날 그 누가 그대에 대한 기억[記憶]을 상기[想


起]시키겠읍니까 ? .  그 무엇이 영겁[永劫]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입니까 ?.   역사[歷史]는 쉽게 잊혀집니다. 언젠가 기억[記憶]의 잔재[殘滓]를 정리[整理]하게 되는 날, 편지[便紙]와 사진첩[寫眞帖] 그리고 리본과 꽃 들, 이 모든 것은 해묵은 서랍[舌盒]으로부터 추방[追放]당한 몸으로 불꽃 속에 소멸[燒滅]해 버릴 것입니다. 전쟁[戰爭]과 평화[平和] 조약[條約], 섭리[攝理]와 우


연[偶然], 그리고 만났다가 몸짓하며 헤어져 가는 우리, 그 거창[巨創]한 사건[事件]들 에게도 망각[忘却]의 세월은 있는 법입니다. 한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호화[豪華]롭게 등장[登場]했던 그대들도 언젠가 그 최후[最後]의 막[幕]이 내릴 때면 관객[觀客]이 사라진 무대[舞臺] 위에 허허로이 서 있게 될 것입니다. 그대들은 호기심[好奇心]에 굶주린 자 앞에서 윤무[輪舞]를 펼쳤던 것입니


다. 비극[悲劇]의 윤무를 말입니다. 그대들은 또한 장터에서 볼 수 있는 마술사[魔術師]였읍니다. 마법[魔法]의 상자[箱子]에 든 뱀을 그대들은 사육[飼育]하고 있었을 것입니다. 그것도 독사[毒蛇]들을 말입니다. 그 뱀들은 그대들이 부는 피리 소리애 맞춰 한 방울의 점액[粘液]으로써 온갖 생명체를 사멸[死滅] 시켰던 것입니다. 그대들은 점술가[占術家]였읍니다. 너절하게 살아 온 어설


픈 과거[過去]를 한번 회전[回轉]시켜 놓고 그 속에 묻혔던 조각난 짤막한 단어[單語]들을 읊어대면서 그 것이 미래[未來]라고 떠들었던 점술가[占術家] 였읍니다. 그러나 그대들은 이제 창녀[娼女]의 육체[肉體]와도 같이 시들어 버렸읍니다. 사치[奢侈]의 껍질 속에 만신창이[滿身瘡痍]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. 그럼에도 불구[不拘]하고 생명[生命]은 여전히 부지[扶持]하고 있었읍니다.


  어린 생명들이 자라 나기를 기다리느 라고 말 입니다. 그리하여 그대들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만났던 것이고, 끝내 그 성장[成長]한 아이들 에게서 다시금 향락[享樂]을 취하고 말았읍니다. 그대 거창[巨創]한 사건[事件]들이여, 그대들은 이제 성병[性病]으로 전락[轉落]해 버렸읍니다. 남자의 정액[精液]을 오염[汚染]시킨 그대는 임신부[姙娠婦]의 자궁[子宮]에 악[惡]의 형상[形狀]을


태동[胎動]시켰읍니다. 한번 존재[存在]했었기에 이젠 이미 사라져 버린 역사[歷史]의 형상[形象]들이여, 그대들은 삶을 지닌 자들과는 결코 거래[去來] 할 수가 없게 되엇읍니다. 그대들은 거짓투성이 인데다 생기[生氣]마저 잃은 시체[屍體],  고독[孤獨]과 고난[苦難]을 지닌 썩은 시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. 그대 과거의 공존체[共存體]들 에겐 오늘의 그 것과 마찬가지로 진실[眞實]이


결여[缺如]되어 있었읍니다.   말 하자면 오해[誤解]와 권태[倦怠]와 허식[虛飾]으로 포만[飽滿]된 상태[相態]이 겠읍니다. 부모로부터 소외[疎外] 당했던 소년[少年]이나, 정원[庭園] 모퉁이에서 홀로 아이들이 놀고 있는광경[光景]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소녀라 면 공존체험[共存體驗]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며,  따라서 인간은 개체[個體]로서 존재[存在]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금


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. 그러나 전통[傳統]을 이어받아 억세게 뻗어가는 공존체의 횡포[橫暴]로 하여 이 연약[軟弱]한 어린 생명들은 수 없이 박해[迫害]를 받아 왔읍니다. 지금 막 형성[形成]되는 과정[過程]에 있는 이 조그맣고 연약한 생명들은 자기들이 다소곳이 간직하고 있던 고독의 세계가 박탈[剝奪]당했다 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얼마나 그 아픔이 컸겠읍니까 ! .    우리는 이렇듯


순진[純眞]하기만 한 그 들이 퇴영[退嬰]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슬픔 따위는 거두어 버리고 말았읍니다. 그렇게 해서 고히 간직해 두었던 그들의 침묵[沈默]은 어느 날 저녁의 소음[騷音] 속으로 침몰[沈沒]해 버렸읍니다. 그들의 침묵이 그렇게 무[無]에로 사라져 가는 동안 소음[騷音]은 그 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 들 속을 헤치고 들어가 왕국[王國]을 건설[建設]해 놓았읍니


다. 그런데 이제 주위[周圍]의 박해[迫害]로 인해 사라져 가야 했던 고독이 점차 그들에게 공동[共同]의 관심사[觀心事]로 등장[登場]하기 시작 했읍니다. 그 들은 모두 이 고독이 있는 광장[廣場]으로 몰려드는 것입니다. 이러한 움직임은 파도[波濤]를 몰고 왔읍니다. 그 파도는 고독이라는 이름을,  아 !   어처구니 없게도 전락[轉落]의 길을 걷고 있던 고독이란 이름을 소리높여 외쳐대고


있읍니다.  이제 그들은 다시금 파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또한 모든 책자[冊子]에도 이 파도에 대한 글을 싣기에 바빴읍니다. 이렇듯 공허[空虛]한 소요[騷搖]의 파도는 인간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가 봅니다.  그러나 인간은 결코 이 세상에 고독이 존재하기를 바라지는 않는가 봅니다. 그대가 마음의 문을 닫아 보십시요 그러면 그들은 필시[必時] 그대의 창문[窓門]앞에 모여 서게


될 것입니다.  가로수[街路樹]가 늘어선 공원[公園]길을 걸어 보십시요. 그 때 그들은 당신에게 무한[無限]한 관심[觀心]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.  문 앞에 나와 앉아 있는 이웃에게,  저녁이 그대의 마음을 고요로 감쌌다고 해서 한 마디의 말도 던져주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 보십시요.  그 는 당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자기의 가족[家族]들을 소리쳐 불러 낼 것입니다. 그리고는 그대에게 저


주[詛呪]를 퍼 부을 것입니다. 심한 경우엔 그 의 자식들이 그대 에게 상처[傷處]가 나도록 돌맹이를 던져 대기도 할 것 입니다. 고독을 향유[享有]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봅니다.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자식들은 부모는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. 그 부모에겐 그러한 자식들이 못내 근심스럽기만 합니다. 그러나 이러한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기쁨과 애환[哀歡]을 느낄 줄 알고 있


읍니다.   결국 이들은 집안에서 마저 적의[敵意]에 찬 눈총을 받아가며 이방인[異邦人] 취급[取扱]을 당 하게 됩니다. 그리하여 이들에 대한 적개심[敵愾心]이 날이 갈 수록 증대[增大]되면  아직 어린이들은 가족[家族]들로 부터 온통 증오[憎惡]의 대상[對相]이 되어 버립니다. 그렇게 인생은 시작됩니다. 설움의 깊은 곳에서 그렇게 이들의 운명[運命]은 시작 되는 것 입니다. 그러나 이 운


명이 시작되는 소리가 우리의 귀에 까지는 전달[傳達]되지 못하고 맙니다. 하녀[下女]의 잡담[雜談]소리와 자동차의 소음[騷音]이 한결 더 크게 들려오기 때문일까요 ? .  그 대들도 한 번쯤 이 들의 창가에 다가서 보십시요.  창 안쪽엔 고독으로 응결[凝結]된 하나의 생명이 설움을 안고서 흐느끼고 있을 것입니다. 불안[不安]으로 가득 찬 소녀의 나직한 흐느낌은 커다란 종소리 와도 같이 내 마


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.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이들 어린 생명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결코 그 창가를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.  그 들이 여는 창문[窓門]의 소리는 나의 온 몸에 전률[戰慄]을 불러 일으킵니다. 겁에 질린 그들의 손길이 내 마음에 와 닿습니다. 그러나 내겐 그들 에게로 다가설 마음의 여유[餘裕]가 생기지 않는군요 . 그들의 고통[苦痛]을 잠재워 줄 수 있는 말을


나는 아직 갖추고 있지 못했으며 또한 그들의 침묵[沈默]보다 숭고[崇高]한 그 무엇이 나에겐 없기 때문입니다.  공연히 그들을 방해[妨害]하고 싶지는 않습니다. 지금 나의 머리 속엔 저 고독한 무리들의 삶이 거대[巨大]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읍니다. 그 들은 나를 밤의 심연[深淵]으로부터 일깨워 주고 있읍니다.  나를 승화[昇化] 시켜주고 나의 껍질을 벗겨주고 있읍니


다. 내 마음 한 구석엔 그 들이 비춰주는 밝은 빛이 조용히 깃들고 있읍니다. 또 하나의 다른 공존체가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나는 하지 않게 되었읍니다. 그들 보다도 더 알알하게 내 곁을 스치는 감동[感動]은 없을 테니까요.  그러나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들게 됩니다. 슬픈 자태[姿態]로 창가에 서 있을 뿐인 이런 어린 생명이 어찌하여 그다지도 거대한 힘으로 나에게 그토록 사랑하는 고


독을 안겨다 줄 수 있는지 를 말입니다. 그들이 내 마음에 심어준 고독은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까지 이어질 것입니다. 고독의 행로[行路]가 세월을 타는 공동체의 행로와는 방향[方向]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? .  하긴 과거[過去] 속에 쉽사리 묻힐 수도 있는 것이 고독이라 하겠읍니다. 그러나 고독의 역사엔 종말[終末]이 없읍니다.  따라서 고독은 소멸[消滅]되어질 수도


없는 것입니다.  충분한 휴식[休息]을 취하고 나면 고독은 조그만 몸짓으로 미소[微笑]를 띠며 다시금 일어나서는 미래로 향한 발길을 끊임 없이 옮겨 댑니다. 고독이 뿜어내는 숨결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며 그 의 혈관[血管]에서 흐르는 피의 고동[鼓動]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도 같이 우리의 정적을 온통 뒤 흔들고 있읍니다. 고독은 우리의 어두운 밤길을 비춰주는


별빛 입니다.   언젠가 그 어느 지역에 창조자[創造者] 한 사람이 있어서 몇날 며칠을 두고 온 심혈[心血]을 기울인 끝에 하나의 작품[作品]을 완성[完成]시켰다고 해 봅시다. [ 내가 여기서 구태여 창조자를 예로 든 이유는 그들이 가장 고독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] . 지금 우리가 그의 작품[作品]을 소유[所有]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,  또는 그 의 시대[時代]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,  그 가


우리의 시대에 와서는 완전[完全]히 사라져 버렸다고 할 수 있겟읍니까 ?.   하나의 작품이 창작[創作] 과정[過程]에서 일으켰던 바람은 그 작품의 주변[周邊]에서 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. 꽃을 스치고 나비의 날개를 타고서 새 생명을 분만[分娩]하는 여인[女人] 에게로 까지 불어 닥칩니다. 여기에 있는 이 그림이, 이 조각[彫刻]이, 혹은 저 시작[詩作]이,  그 당시[當時] 그 작품의 과정


[過程]에서 일어 났던 바람이 몰고 온 변신[變身]일런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?   아득한 시절에 살았던 한 고독한 창작자의 체취[體臭]는 오늘날 까지도 우리 주변을 면면히 감돌고 있는 것입니다.  비록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직접적으로 아는 바는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....  그 누가 신[神]에게 드리는 애절[哀切]한 기도[祈禱]를 , 하나의 어린 생명이 죽어 가던 날의 쓸쓸한 기


억[記憶]을,  그리고 사형수[死刑囚]의 감방[監房]을, 값싼 유행가[流行歌] 가락처럼, 대문[大門] 여닫는 소음처럼 그렇게 쉽사리 잊을 수 있겠읍니까 ?.   창조자의 세계에는 결코 죽음의 공포[恐怖]가 있을 수 없읍니다. 나는 믿고 있읍니다.  이미 인간은 사라져 갔어도 그들의 의지[意志]와, 어느 의미심장[意味深長]한 순간에 그들이 펼쳤던 손은, 그리고 먼 창가에 서서 지어보던 고독한 미


소[微笑]는 우리의 마음 속에 살아 남을 것이라고..... 고독은 이렇게 영원[永遠]히 변모[變貌]하는 과정 속에서 살고있는 불사조[不死鳥]입니다.   비록 우리가 그 를 사상[事象]의 저 편으로 밀어 버렸다고는 할 지라도 고독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읍니다. 그렇습니다. 사상[事象]이 그렇게 존재[存在]하고 있듯이 고독은 우리 생활의 한 부분으로서 이 곳에 분명히 살아 남아 있을 것입니다.





작품해설

인간[人間]은 자기 자신이 언젠가는 이 세상이라 는 무대[舞臺]에서 사라질 것을 예기[豫期]할 때 진정한 고독의 의미[意味]에로 접근[接近]할 수 있을 것이다. 왕좌[王座]위 의 제왕[帝王]도 결국은 무덤으로, 끝내는 한 줌의 흙으로 변할 것이다. 홍안[紅顔]의 예쁜 여인의 화사[華奢]함, 스스로 땅에 묻혀 가면 누구도 그 들 과거[過去]의 기억[記憶]으로 부터 불러 일으켜 주지 않는다. 역사


[歷史]도 쉽게 잊혀진다. 하물며 역사를 구성[構成]하는 지엽[枝葉]의 인간 기록[記錄]이랴....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기억, 그 것을 세월 흘러 절대 앞에 서서 정리[正理]하게 될 때 그렇게 내 가슴 울리던 편지[便紙], 사진첩, 리본과 꽃도 사라진다. 해묵은 서랍으로 부터 추방[追放] 당한 그 기억의 분신[分身]이 타 오르는 불꽃과 함께...... 전쟁[戰爭]과 평화, 섭리[攝理]와 우연[偶然], 그


속에서 만났다 몸짓하며 헤어지는 우리,  한 때는 많은 사람들 앞에 호화[豪華]로운 분장[扮裝]으로 등장[登場]했던 그 들,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..... 우리가 퇴장[退場]한 그 무대[舞臺]엔 또 다른 우리가 관객[觀客]을 모아 놓고 그 들 굶주린 호기심[好奇心] 앞에 춤추고 노래 할 것이다.   고독... 어느 인간도 자신의 고독으로 육신[肉身]을 지탱[支撐]하고자는 아니 할 것이다. 그러나 이


고독을 나의 것으로 향유[享有 하기도 쉽지않다.  한 번 쯤 어둠이 흐르는 창가로 우리의 몸을 옮겨보자. 거기엔 고독으로 응결[凝結]된 또 하나의 생명이 설움을 안고서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.  그 도 나처럼 흐느끼고 있다. 창유리[窓琉璃]에 비친 그 는 또 하나의 외로운 나 이니까..... 자동차 소음[騷音]조차 잠든 깊은 밤,  창 밖을 보자. 거기엔 불안[不安]으로 가득찬 소녀의 나직한 흐느낌


이 있다. 나직한 흐느낌은 내 마음을 흔든다. 나는 왜 잠을 못 이루는 어린 생명의 아픔까지 공유[共有]해야 하는가.. 슬픈 자태[姿態]로 창가에 서 있는 이들 어린 생명,  그다지도 거대한 힘으로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고독을 안겨준다. 고독은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 까지 이어졌다. 비록 우리가 그 를 우리의 기억 저 편으로 밀어 버렸다고 해도 그 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. 사상이 그렇게 존재[存在] 하듯이 고독도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이 곳에 분명히 살아 남아 있는 것이다.




저자: Rainer Maria Rilke : 1875~1929              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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