하늘[天]과 땅[地]은 모든 자연의 현상[現狀]과 온갖 사물[事物]의 형태[形態], 질서[秩序], 생태[生態]를 포용[包容]하고 생성화육[生成化育]하고 있다. 그러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는 하늘과 땅이지만 번거롭지도 않고 요란[擾亂]스럽지도 않게 간단[簡單], 평이[平易], 고요하다.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듯이 담박하면
서도 실수하는 일이 없는 천체[天體]의 운행[運行]은 확연[確然]하여 사람에게 그 쉬운 것을 보여주고 땅의 작용은 순탄[順坦]하여 사람에게 간편[簡便]함을 보여준다. 평이하면 알기쉽고 간단하면 따르기쉽다. 우주자연[宇宙自然]의 현상이나 인간의 운명[運命]은 일정불변[一定不變]한 것이 아니라 항상[恒常] 바뀐다 .
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다시 겨울이 오며, 낮이 지나면 밤이오고 다시 낮이온다. 이 것은 두 기운[氣運]의 음양[陰陽]이 천변[遷變]하고 변화[變化]하는 작용[作用]때문이다. 구체적[具體的]인 음과 양은 글자 그대로 그늘진 것을 음이라 하고 밝은 것을 양이라 할 수 있지만 방위[方位]로는 아래와 위를
음양으로 표현[表現]할 수 있고 기온[氣溫]으로 말하면 찬 것과 더운 것을, 도덕률[道德律]로 말하면 악[惡]과 선[善]을 음양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. 즉 그 위치[位置]나 성질[性質]이 상반[相反]될 때, 온순[溫順]하고 나약[懦弱]하고 어둡고 그윽한 것을 음이라 한다면, 활발[活潑]하고 굳세고 밝고 표면적[表面的]
인 것을 양 이라고 하는 것이다. 여하튼 우주삼라만상[宇宙森羅萬象]은 음과 양 어느 한쪽에든 속하고 있는 것이다. 예를 들면 하늘은 양, 땅은 음, 해는 양, 달은 음, 낮은 양, 밤은 음이다. 또 불은 양, 물은 음, 강건[剛健]한 것은 양, 유순[柔順]한 것은 음, 높은 것은 양, 낮은 것은 음, 큰 것은 양, 작은 것은 음, 남자는 양,
여자는 음, 군자[君子]는 양, 소인[小人]은 음, 길[吉]한 것은 양, 흉[凶]한 것은 음, 복[福]된 것응 양, 재앙[災殃]은 음, 홀수는 양, 짝수는 음 등이다. 이런 식으로 천지의 모든 현상과 모든 사물을 음양이원[陰陽二元]으로 구분[區分]할 수 있다는 것이다. 음양[陰陽]의 배합[配合]으로 의하여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, 음양
의 유전[流轉]으로 모든 것은 변화[變化]하고 생성[生成]된다는 것이다. 즉 하늘과 땅이 공존[共存]하므로 인하여 天地사이의 삼라만상이 생성[生成]되어 자랄 수 있고 남녀[男女]가 있으므로 인하여 새로운 생명[生命]이 탄생[誕生]할 수 있는 것이다. 땅이 존재하지 않는 하늘만 으로는 하늘의 커다란 움직임은 이루어
질 수 없으며, 땅만의 힘으로는 땅의 큰 사업은 성취[成就]될 수 없는 것이다. 인간[人間]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. 남자만 으로 또는 여자만 으로는 인간의 생존[生存]은 지속[持續]될 수 없는 것이다. 인간 뿐만 아니라 삼라만상 모든 만물[萬物]이 陰陽二元[음양이원]의 논리법칙[論理法則]에 의하여 구성되어 공존하는
것이다. 陰陽의 법칙은 고정[固定]하거나 정체[停滯]하지 않으며 부단히 흐르고 바뀐다. 밤과 낮이 바뀌고 춘[春],하[夏],추[秋],동[冬]의 사게절[四季節]이 바뀜은 陰陽의 변전[變轉]으로 말미암음이다. 주역[周易]에서 나타나는 철학[哲學]과 모든 사물의 현상은 궁극[窮極]에 도달[到達]하면 변화[變化]가 생기고 변
화가 생기면 새로운 국면[局面]이 전개[展開]되어 시작한다 는데 있다. 온갖 힘을 기울여 정상[頂上]에 올라서면 다음에 오는 것은 내리막길이 있을 뿐이며, 봄에 새싹이 움터 뜨거운 여름철에는 한껏 산[山]과 들에서 자기들의 무성[茂盛]함을 자랑하는 나무들은 그 번영[繁榮]속에 이미 가을의 조락[凋落]이 그 무성함 속
에 담겨 있는 것이다. 한껏 둥글어진 달은 이지러질 수 밖에 없고 겨울의 등걸처럼 굳어진 앙상한 나목[裸木]의 내면[內面]에는 봄의 움틈과 여름의 무성한 번영을 위한 준비[準備]가 축적[蓄積]되고 있는 것이다. 이렇듯 항상[恒常] 흐르고 바뀌면서 서로 작용하여 한 순간[瞬間]의 상황[狀況]은 다른 장시간의 상황을 낳는
것이 陰陽이다. 그리하여 우주[宇宙]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항상 생성되고 생성되며, 새롭고 새로와 져서 발전[發展]과 번영[繁榮]을 영원[永遠]히 계속[繼續]한다는 것이다. 인간도 천지간에 움직이는 만물[萬物]의 온갖 현상 속의 한 존재[存在]이므로, 인간은 나약[懦弱]함과 동시에 천지간에 유동[流動]하는 원리와 법
칙에 지배[支配]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에 불과[不過]하다. 그러니 인간인들 어찌 이 법칙과 원리에 복종[僕從]치 않겠는가.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복종만을 하는 소극적[消極的]인 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[積極的]으로 이 천지자연의 원리와 법칙에 참여[參與]하고 실천[實踐]한다면 동등한 지위[地位]
를 나란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이며 인간 자신이 천지자연의 원리와 법칙을 스스로 사용[使用]하는 주체[主體]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. 그렇기 때문에 周易은 인간의 운명[運命]이라는 것을 다루고 있지만 그 운명이라는 것은 인간자신이 개척[開拓]할 수 있다고 보므로 인간이 숙명적[宿命的]이기를 거부[拒否]한다. 불운
[不運]한 상황속에 처해 있을때는 멀지않아 반드시 돌아올 행운[幸運]의 날이 있음을 믿을 줄 알아야 하며 그 에 대처[對處]할 준비를 갖출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. 이 것은 항상 변화하는 陰陽의 법칙을 자기자신의 것으로 신념화[信念化]하고 생활화 하여 주어진 여건[與件]에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와 그리고 노력[勞力]을 아
울러 가진다면 인간은 운명에 역행[逆行]할 수는 없지만 운명의 방향[方向]을 바꿔 놓을 수는 있음을 말한 것이다. 인간만사는 항상 변화 하므로 부귀[富貴]한 때에 교만[驕慢]하지 말며, 빈곤[貧困]한 때에 비굴[卑屈]하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한다.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自主[자주]할 수 있기에 비록 극한 어려움에 처
해 있을 때 일지라도 참고 때를 기다리면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 돌아올 것이다. 궁즉변[窮即變], 변즉통[變即通]이라 막히면 변하고, 변하면 통한다. 궁극즉반[窮極卽反], 반류즉신[反流即新]이라 사물이 극에 도달하면 반대현상이 일어나고 반대로 흐르면 새롭게 시작된다.
周易 徐相潤 先生 譯解書 에서 옮겨온 글 .
|